鎭江魯氏錦溪公派 소개

序(서)
古來史上에 芳名을 後世에 傳하시는분 許多하지마는 愛國愛族하시는 義理를 지키신분은 오직 始祖侍中公 
(江華君魯啓)은 鎭江人으로서 箕聖의 侍從으로 東來하야 江華君을 受封하시고 士農工商에 治蹟이 莫大함으
로 人民들은 永世不忘之意로 依上加錄曰東政이라하여 現世에 이르기까지 上衣에는 東政을 달게된다.
後孫中郞公 (魯忠國)은 世稱八學士에 一人이시고 後孫岳隱公(魯愼)은  宣廟朝祖의 忠臣으로서 紅巾賊을 破 
滅하고 京城을 收復한 後 寶鳳山에 드러가 杜門操身하던 卽杜門洞七十二隱의 一人이시며 그 後孫錦溪公(魯
認)은 義理의 人物인 點에서 後人의 追慕를 본받을 만한 어른이다.
公은 學問人으로서 자랐으나 壬辰의 國難을 當하자 筆墨을 던지고 弓矢를 들었으니 그 救國의 情熱은 學問
人의 따르지 못할바요 公은 壬辰七月七日梨峙의 大接戰으로 壬辰史上의 梨峙의 大捷이란 公의 義氣血戰에
倭賊九百餘級을 斬하고 우리捕虜人 男女五十餘名을 救出한 後 七月八日에는 權慄先生과 合勢하야 熊峙와 
梨峙에 殺到하는 倭賊五千餘兵을 擊破하고 海上에는 李忠武公이 閑山大捷이란 歷史的大戰果를 얻은것이다
그 後公이 三十二歲(丁酉)八月 南原城戰鬪에서 倭賊에게 生捕되여 日本으로 묶여가 萬里異域에서 窟穴生活
을 하면서도 祖國을 思慕하고 雪復의 뜻을 變함없이 二年間의 苦楚를 격고 다행히 明國差官의 援護를 얻어
賊窟을 脫出하야 中原으로 갔던것이다.
中原에 到着하야 武吏書院에서 諸賢들을 만나 經學을 講論도하고 詩韻을 唱酬도하매 모두들 海東의 夫子라
고 稱嘆하였으며 神宗皇帝의 下賜馬로서 故國으로 도라오니 宣祖大王께서도 稱賞하시기를 거듭하였다.
甲辰六月에 餘倭들이 慶南唐浦를 侵入했을적에 公은 族兄되는 冠巖公(魯鴻)과 더불어 勇敢히 싸워 餘倭들을
 擊破한 後上으로부터 勝捷圖의 下賜를 받고 마침내 水原府使 黃海水使贈資憲大夫 兵曹判書兼知義禁訓練院
知事等을 歷任하시든 분이시다.
宗門一同과 後孫들은 先祖의 松竹之節과 不窟之義를 永世不忘하기 바란다.
西紀 1961년(辛丑) 12월  일
後孫 魯文鍾 
鎭江魯氏錦溪公派총무 노충식(010-5252-5653)
 
 
붉은부리갈매기가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 김로동에서 씀 ☞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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