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풍이씨(咸豊李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에서 충렬, 충선, 충숙, 세 왕(三王)을 모신 명재상으로 벽상삼한 삼중대광 좌명공신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 휘(諱) 광봉(光逢)이시다. 공(公)은 충렬왕 원년(1275년)에 출사(出仕)하여 1305년 정당문학을, 충선왕 원년(1309년)에는 판전학사를 역임하셨고, 충숙왕 때는 원년(1314년)에 상호군 겸 참지정사, 6년에 동지밀직사사, 7년에 평리, 11년(1324년) 4월에는 삼사사에 임명되셨다.
특히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국정을 살필 때 왕지(王旨)를 받들고 고려와 원나라를 오가며 왕을 보필하셨고, 충선왕이 원나라 영종의 환국령을 거부하는 등의 이유로, 걸어서 10개월이 걸리는 토번 살사결로 유배를 당했을 때, 직보문각 박인간과 전대호군 장원지 등 18명 중에 평리 휘(諱) 광봉(光逢)도 함께 수행하셨다. 상왕(上王) 충선이 유배에서 풀려나 연경 사저로 귀환했을 때 충숙왕은 公을 정이품 삼사사에, 박인간을 종이품 밀직사에, 장원지를 종이품 밀직부사에 임명하면서, 고(暠)를 입왕(立王)하려고 서명한 자들은 모두 파직시켰다. 한편 충선상왕은 연경 사저에서 公을 좌명공신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에 봉(封)하였고 민지와 이색은 公을 고려의 삼충신 중 한분이라고 일컬었다. 함풍이씨(咸豊李氏)의 득관(得貫)은 휘(諱) 광봉(光逢)을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으로 봉(封)한 데서 연유(緣由)하였다.
함풍은 함평의 옛 이름으로 고려충신 휘(諱) 광봉(光逢)이 터를 잡은 곳이다. 그 후로 후손들이 함평군 함평읍 만흥리 217-14번지 시조묘역에 향사우(享祀宇) 영풍사를 짓고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함평 향교의 유림들과 함께 제향(祭享)하며, 조상의 빛난 얼을 이어받아 명문가로서 충효애족(忠孝愛族)하며 번영(繁榮)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