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이씨 비문

牙山李氏 始祖 諱 周佐께서는 경주이씨 중조 소판공 이거명의 현손 승훈의 둘째이시며 고려 광종 때 태어나 어려서 부터 영명하시어 고려문신 좌복야 이성공께서 동경유수로 있을 때 그를 큰그릇으로 여겨 천거 국자감수학하여 목종11년(1008) 경주이씨 일족에서 처음으로 갑과급제 하여 상주목기실참군사에 발탁되시고 현종7년(1016) 사헌부 감찰어사에 올라 어사대에 나아가시니 고사했던 사헌대뜰의 측백나무가 되살아났다고 고려사는 상서로움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종14년(1023) 시어사 이어 기거사인 동북면병마사 현종21년(1030) 어사중승 덕종2년(1033) 우간의대부 이듬해 국자좨주좌간의대부 정종2년(1036) 우산기상시를 역임하시고 정종6년(1040) 음八월 형부상서판어사대사로 재직 중 귀천하시니 조정에 있은지 40여년 단 한번도 부패와 청탁에 연루되지 아니하셨으며 성품이 단량하고 뜻이 크고 기개가 뛰어나 세상에 매인 데가 없고 의표가 옥처럼 위대하시어 당시 사람들이 그를 대신으로서 체통이 엄연하다고 하다. 이에 정종은 애도하며 사공상서 우복야를 추증하고 부의로 쌀보리4백석을 내리고 차와 의복을 하사해 조정 백관들에게 會葬을 명하다. (고려代회장:강감찬李周佐최사추)

○ 一世 諱 舒께서는 고려 고종때 밀직부사로 고종38년(1251) 군기감에 고종45년(1258) 왕실을 보위하여 무신 최의의 권세를 제압하고 나라의 기강을 세운공이 있어 원종3년(1262) 낭장으로 벽상공신의 호를 받아 원종9년(1268) 공신당에 그 행절을 받들어 판위위시사 벽상공신 삼중대광으로 아주백에 봉해져 후손들에 복록의 터전을 여시니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여 휘 주좌를 시조로 본관을 휘 서의 봉지인 牙州(아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다 .

그 까닭은 수백여 년간의 세계가 실전되어 始祖 諱 周佐부터 一世 諱 舒의 계대를 밝힐 수 없기에 후손 휘 서를 일세로 세계를 이어온 터이다.

○ 4世 諱 邕께서는 두문동 항절실 항절반에 봉안되신 고려절의로 공민왕조에 문하시중을 지내시고 나라의 장래를 알고 벼슬을 버리고 아산 석교에 은거해 釣隱조은이라 스스로 호하다 조선개국과 더불어 이성계가 좌의정을 세차례나 제수했으나 망국유신을 자처 나아가지 아니하다. 

○ 諱 邕의 맏이신 5世 諱 天桂의 둘째로 대사간원정언을 역임하신 6世 諱 原明께서 正言公派 派祖이시다. 

○ 세거지와 선영은 10世 諱 緝께서 단종 승하후 가솔을 이끌고 황해도 봉산군 절령으로 은거해 산수면 사인면에 1 3世 때 황해도 황주군 청룡면 포남리에 定穴하고 20世 移居로 황해도 신천군 가산면 백석동에 이르다. 

○ 관직이 계승된 것은 대략 사적 직계대강에 의지하자면 始祖 李 周佐:형부상서판어사대사.贈사공상서우복야,  舒:판위위시사.벽상공신삼중대광, 養中:병부상서, 允重:좌복야, 邕:문하시중, 天桂:승의랑사헌부감찰.贈참판, 原明:대사간원정언, 節:진사, 雲生:진원현감, 達孫:선략장군, 緝:태학훈도, 啓英:적순부위, 元弼:통정대부.贈호조참판, 珪:제릉참봉, 先立:첨절제사, 海一:병마절제사, 潤:선전관, 東振:통덕랑으로 충정을 지켜 두 마음을 품지 않았으며 周를 높이는 대의를 세웠음이다

높은 節義는 鳳山 岊嶺의 붉은 해처럼 밝았고 어진 德은 만민의 추앙이 되었으며 뛰어난 문장과 학문은 청고한 운치로 이어져 와 온 세상을 놀라게 하다

 


직박구리가 평안북도 벽동군 대평면 하평동에서 씀 ☞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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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이씨 대동보 발행: 2014.6.13, 인쇄처: 창문사,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235-1번지, 02-2277-3999.
찌르레기과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내산리에서 씀 ☞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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